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문단 편집) === 후기 철학 === 피히테의 전기 철학은 칸트의 선험적 통각(순수 통각)을 순수한 자아의식으로 이해했다는 데에 의심이 있을 수 없다.[* 《피히테의 자아론》 p.146] 그리고 피히테는 선험적 영역에서의 순수한 통각을 '절대적 자아'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후기 철학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1800년 경부터 피히테의 사유에 변화가 생긴다. 그는 학문론의 후기 원고에서, 자아와 비아의 분열을 넘어서 (신적인) 절대자 속에 있는 통일의 원리에 이르고자 한다. 이 때의 절대적 자아는 곧 절대자, 신을 뜻하기도 한다. 즉, 피히테는 학문론에서처럼 모든 경험적 의식의 근저에 있으면서 경험을 가능케 하는 선험적 의식으로서의 절대적 자아를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자, 신이라는 의미로 절대적 자아를 사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절대적 자아는 유한한 자아(경험적 자아)에게 있어서 하나의 이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나"라고 하는 절대적인 통일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적인 경지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유한한 인간에게 있어서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한자인 인간의 자아에 있어서 비아는 궁극적으로는 부정될 수 없는 한계로서 남게 된다. 그러므로 그 자연을 이해하려는 절대적 자아는 엄밀한 의미에서 '신의 자아'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피히테는 '비아의 절멸을 향한 무한한 추구'라는 초기의 입장에서 돌아서서, 자신의 후기 철학으로 갈수록 추구의 방향을 '절대자와의 합일'이라는 것으로 입장을 바꾼다. "불변자와 하나가 되고자 하고 융해되고자 하는 이 충동은 모든 유한한 현존재자의 가장 내밀한 뿌리다."[* "Dieser Trieb, mit dem Unvergänglichen vereinigt zu werden, undzu verschmelzen, ist die inniste Wurzel alles endlichen Daseins, (...)" ㅡ 《복된 삶을 위한 안내 (Anweisung zum seligen Leben; 1806)》, 1. Vorlesung. SW V, 407.] 이러한 절대자와의 합일에 의하여 복된 삶(seliges Leben)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일찍이 피히테는 『신의 세계통치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에 대하여 (1798)』라는 글에서, 신을 도덕질서와 동일시함으로써 이른바 '무신론 논쟁'에 휘말리게 되어 마침내 예나 대학 교수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그는 신을, 우리의 '지의 추구'에 있어서 우리가 향해야 하는 절대자로 파악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